상식 [류 진 기고글] 2025년에 바라본 제주 4.3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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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개정 2022.1.11.>
1. "제주4·3사건"이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 아름다운 풍경, 그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생선과 먹거리 제주도.
설레는 맘 안고 도착하는 제주공항 활주로 밑에 묻혀 있는 수많은 억울한 죽음들, 1947년 피로 물들었던 제주의 아픈 역사를 1년에 한번 쯤은 되돌아 봐야 하지 않을까?
일본과 한반도 중국을 연결하는 섬 제주는 일본군의 군사적 요충지로 사용되었고 일본군경의 통치하에서 심한 핍박과 약탈을 받았던 제주도민들은 일본경찰에 대한 증오가 잠재되어 있었다.
1947년 3월 1일
해방 후 이데올로기 시대에서 우익과 좌익의 갈등이 심화되어 있었고 유독 제주는 미군과 경찰에 대하여 민심이 악화되어 있었기에 김달삼을 중심으로 한 남조선노동당의 영향력이 유독 득세하고 있었다.
3.1절 기념행사에 이에 불만을 품은 많은 군중들이 모여들었고 행사도중 경찰이 타고 있는 말에 의해 6살 아이가 말발굽에 치었지만 후속조치나 사과 없이 돌아서는 경찰에 도민들은 분노하였고 항의와 사과촉구를 위해 경찰서로 몰려든 주민들에게 경찰은 총기를 난사하여 6명이 사망하였다.
이 사건은 남로당의 주도로 제주 도민 95%가 참여하는 총파업과 선거 거부로 이어졌으며 이를 계기로 경무부장 조병옥에 의해 응원경찰로 지칭된 타 지역의 경찰력과 서북 청년단이 치안을 이유로 증원되어 남로당원의 색출과 고문, 처형들이 이루어졌다.
1948년 4월 3일
각 지역의 오름마다 봉화가 피어 올랐다.
남로당은 파업본부 습격, 무분별한 체포와 모진고문에
봉기하여 무장 투쟁을 선언하고 경찰서를 비롯 우익인사와 우익청년의 집을 습격하였으며 민간인 8, 경찰 4명이 희생되었다.
이 일로 이승만은 제주 비상경비 사령부를 설치한다.
남로당이 저지른 것처럼 꾸며졌으나 실제로는 우익청년단에 의해 조작된 오라리 방화사건을 계기로 무차별 학살을 시작한다.
이 학살로 제주도민 대략 3만여명, 9명중 1명이 사망하거나 실종 되었다.
남로당 유격대가 고작 350명 정도였던 것을 감안한다면 대부분의 희생자들은 좌익과는 전혀 거리가 먼 노인, 부녀자, 심지어는 간난아이까지 무차별로 차마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당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후략)’ 라며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존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가 적시돼 있다.
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이 법을 집행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자들이 자기의 부귀영화를 위해 법을 빌미로 총칼을 휘둘러 그렇게 많은 아무 죄 없는 소중한 영혼들이 목숨을 잃었다.
2025년 4월
대한민국은 또 한번의 기로에 서있다.
전 세계인이 현장을 목격하고 최소한의 양심으로 고백하는 자들이 있어도 법전을 깔고 앉아 국민들을 뭉개고 있는 자들, 정치라는 넥타이를 메고 대중들의 귀를 더럽히는 자들, 은 삼십냥에 예수의 이름을 알뜰히 팔고있는 자들로 부터 시민들이 깨어나고 한라산 자락 차가운 동굴에서 울부짖었던 영령들이 부디 편안히 잠들 수 있는날이 조속히 오기를 그래서 내년 이맘때쯤엔 정의와 평화가 있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2025년 3월 [류 진]님의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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