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기고 글] 대한이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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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이 일곱이 진흙색 일복 입고
두 무릎 꿇고 앉아 하느님께 기도할 때
접시 두 개 콩밥덩이 창문열고 던져줄 때
피눈물로 기도했네 피눈물로 기도했네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
산천이 동하고 바다가 끓는다
에헤이 데헤이 에헤이 데헤이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
전중이 일곱이 진흙색 일복 입고
두 무릎 꿇고 앉아 하느님께 기도할 때
접시 두 개 콩밥덩이 창문열고 던져줄 때
피눈물로 기도했네 피눈물로 기도했네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
유관순 열사는 서대문 형무소 여옥사 8호실에 갇혔었다고 한다.
옥사 8호실에는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심영식, 이윤희, 권애사, 신관빈, 임명애, 김향화 등
7명의 여성 독립운동가가 수감 되어있었다고 한다.
3평 남짓의 좁은 감옥에는 20명이 넘는 수감자들이 함께 생활했는데
그 열악한 옥중에서 '대한이 살았다' 라는 노래를 만들어 공포를 달랬고
서로에게 용기를 불어넣으며 고통을 견디었다고 한다.
이후 유관순 열사는 1920년 9월 28일 17세의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제 곧 삼일절 38695일, 105주년이 된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이름 없이 목숨을 바쳐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
일제치하에서 그렇게 지켜온 대한민국이 우리들의 나라이다.
조국을 떠나 미국땅에서 터를 잡고 살고 있지만
내 나라 사람이 프리미어 축구에서 골을 넣어도, 아름다운 젊은이들이 부르는 한국노래가 폴라리스몰에서 흘러 나올때 대한민국 사람이 아닌 미국 시민으로 살고 있더라도 국뽕이 차오르는 건 우리는 아직도 한국인이라는 변치 않는 사실이다.
일제 이후에도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1960년 [4·19 혁명], 유신체제를 거부했던 1979년 [부마항쟁],박종철 고문 살인 은페 조작으로 부터 출발한 1987년 6월에는 오백만명이 참여해 [6월 민주 항쟁]을 일으켰다.
이후 1980년 5월 18일에서 27일까지 광주 시민들이 계엄령 철패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고 군부독재는 계엄군을 파견해 학생들과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진압했다. 이 사태로 광주에서 606명이 사망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우리가 떠나와 있는 대한민국은 그리고 시민이, 국민이 주인 되는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그렇게 지켜져 왔다.
전두환, 노태우 이후 문민정부의 개혁을 시작했던 김영삼, 국민의 정부와 IMF 외환위기를 극복했던 김대중, 참여정부 노무현, 실용주의를 주장했던 이명박, 탄핵으로 중단되었던 첫 여성대통령 박근혜, 국민들의 촛불대통령 문재인으로 이어지며 일부의 후퇴와 전진을 지속했던 대한민국 민주화는 꾸준히 발전했으며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I am Korean'이라고 떳떳이 이야기했던 시절이 있었다.
정치인들이야 '다 그놈이 그놈'이라고 치부하더라도 미국이나 한국이나 세계 어디라도 국가는 공론과 토론을 통해 정치가 진행되어야 하며 폭력과 억압, 총칼로 억제되어서는 안된다.
삼일절에서 각종 민주화 항쟁에서 목숨을 바치신 순고한 영혼들을 기리며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흑역사는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다시 "대한이 살아나길... 대한이 살기를" 두 무릎꿇어 간곡히 기도해본다.
2025년 삼일절에 즈음하여 [류 진]님의 기고 글
https://www.youtube.com/watch?v=p4nY65XpD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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